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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호주 생활

귀국 당일 1

by annaO 2024.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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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 3년 반 만에 드디어 한국을 간다고 생각하니, 진부하게도 그 간 호주에서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엄청 빠르게. 잠을 설칠 것 같았지만 엄청 푹 잤다. 이전 살던 집에서는 앙칼지게 지저귀는 새소리에 깨곤 했는데 지금은 이 집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 소음에 6시 반부터 깬다. 비행일정은 밤 비행기로 예약해 두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청소하고 나머지 짐 정리하는데 시간은 넉넉했다. 

https://pixabay.com/ko/photos/%EB%B9%84%ED%96%89%EA%B8%B0-%EB%82%A0%EA%B0%9C-%EB%82%98%EB%8A%94-%EC%B2%9C%EA%B5%AD-1504695/

 

아침을 먹고 주방 물건들을 정리하고 쓰레기통에 버려둔  물건 중 몇가지를 집주인 남자(친구 아버지)가 주워 탁자 위에 올려두었다. 버린 건데 왜 주워두셨냐고 물으니, "기부"가 가능하다고 한다. 남은 양념들, 쓰던 이불 이런 걸 다 기부 가능하다고 하시는데 의아했지만 뭐 그렇다고 하니... 쓰던 것들을 한쪽에 잘 모아두면 다 기부를 하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릇이나 쓸만한 것들은 한쪽에 모아두고, 압축해서 버리려고 했던 이불, 베개, 시트도 한쪽에 모아두었다. 내가 쓰던 청소기는 놓고 가면 쓰겠다고 하셔서  벽장에 넣어두었다. 집주인 여자(친구 어머니)는 교회 전체 모임이 있다고 아침 일찍 나가면서 잘 가라고 인사를 했다. 친구는 이미 출근. 몇 번이나 떠나기 전에 선물을 두고 나갈까 고민했지만 그 간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면......... 인류애가 사라져 그만두기로 했다. 

 

청소를 마치자 12시 남짓, 샤워를 하고 욕실 정리를 마치고 쉬었다가 공항으로 출발할까 했는데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많이 버리고 정리했다고 생각했는데 큰 캐리어 두개가 가득 찼다. 옷도 별로 없고, 집에서는 사 오라는 물건들도 없고 그런데 왜 이리 꽉 찬 걸까.

그리고 노트북 두 개와 아이패드가 든 백팩도 무거웠다. 이 친구네 집에서 기차역까지는 버스로 30분은 가야 하고 서던크로스역까지만 도착하면 그 후 이동은 편해진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버스탈 자신이 없어 우버를 불러 탔다. 마실 물까지 제공해 주는 서비스. 시골도 아닌데 버스가 돌고 돌아 30분 거리지만, 차로는 10분 거리인 기차역까지 19불. 

 

기차역에 내려서 큰 캐리어 두 개를 끌고 지나가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봤다. 

기차역에서 서던크로스로 가는 기차를(-우리나라로 보면 지하철 이겠지만) 타고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익숙한 풍경들을 지난다. Clayton 캠퍼스랄지, 자주 가던 caufield 캠퍼스. 학교 병원으로 실습 갈 때 자주 내렸던 역, carnegi 역 등등. 익숙한 역의 풍경도, 멜버른의 풍경, 서던크로스역에서 보이는 내가 살던 고층아파트도 잠시라도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것들이 없었다. 빨리 이 붐비는 서던크로스역을 벗어나고만 싶었다. 서던 크로스 역에 도착하자 마자 공항가는 버스가 5분차로 있어서 바로 타고 공항으로 직행. 

공항버스 사람들은 서로 짐 올리는 것도 도와주고, 손에서 놓친 유모차도 잡아주고 친절했다. 

멜번 북쪽의 풍경은 조금 낯설다.  2층버스의 2층에 앉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했다. 긴장이 풀린 걸까. 3년 반 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출국장에 마중 나온 차(학교 측의 서비스)를 타고 바로 학교 근처 사설 기숙사로 이동했어서 공항이 낯설었다. 둘러볼 시간도 없었다. 사실 그전에도 2-3번은 왔었던 멜버른 공항이었지만. 

점심을 먹지 않아서 공항을 돌아다니며 늦은 점심을 먹을 음식점을 둘러보았다. 촉촉한 음식을 먹고 싶은데, 카페들은 사람이 꽉 차 있었다. 큰 캐리어 두 개를 수레에 싣고 돌아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국내선 공항 쪽부터 국제선까지 돌아봤지만 인천공항처럼 음식점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선택의 폭이 좁았다. 선택은 국물이 있는 중국식 혹은 말레이시아식 같은 국수 요리. 락사인가?  비싸지만 엄청나게 맛없는 국물을 홀짝이며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드디어 공항에 왔구나. 드디어 집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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